
작곡가 전민재
Minjae Jeon
Composer
Biography
작곡가 전민재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의 작곡 부문에서 최연소 1위를 수상(2009)하며 주목을 받았다.
6세에 첫 작품을 작곡한 그는 8세 때 첫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으며 16세에는 첫 번째 대규모 관현악 작품인 ‘교향곡 제1번’을 작곡했고, 같은 해인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노래 10편을 목관, 금관, 타악기를 위한 편성으로 편곡하고 관현악을 위한 서곡을 작곡하여 연주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독일 뮌헨 국립 음대 작곡과 교수인 Hans-Jürgen von Bose를 사사하였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이건용, 유병은, 김성기 교수를 사사하며 우리나라 작곡계의 주목을 받는 차세대 작곡가로 발판을 다져갔다.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당시 ‘현대음악의 잃어버린 서정성을 찾아서’를 모토로 한 작곡동인 [서정적 전위 – 숨]을 결성하여 이듬해 첫 연주회를 가졌으며, 젊은 작곡학도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는 농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다수의 작품을 초연했다.
2010년에는 서울 뮤직 페스티벌에서 그룹 즉흥연주를 참여하였고, 2011년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에서는 한국의 작곡가 시리즈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현대 창작곡을 위한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화음프로젝트페스티벌에 다수 참여했다.
2012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연주회에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작인 ‘Target’을 한국 초연하였다.
2013년 월간객석이 선정한 차세대를 이끌 예술인 10인에 선정되기도 한 전민재는 같은 해 제7회 대원음악상 장려상(2013)을 수상하였다.
2014년 유중아트센터의 상주음악가를 지냈으며, 2015년에는 바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춤곡을 소재로 하는 피아노 음악을 작곡하여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에서 초연하였다. 2016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한불저작권협회에서 현대음악의 저작권에 대해 세미나를 했으며, 같은 해 프랑스의 쇼몽 성에서 열린 한불수교 연주회에서 트리오 오원과 함께 신작을 공연했다.
작곡가의 ‘자작자연’이 상실된 시대에 그는 자신의 피아노 작품 연주와 즉흥연주에 관하여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요작품들은 작곡가 자신에 의해 초연되고 있다.
Interview
Q. 이번 라이징 스타는 세계 3대 콩쿨로 알려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쿨 작곡 부문에서 최연소 1위(당시 22세)를 거머쥔 한국 음악계의 보석, 작곡가 전민재입니다. 라이징 스타 독자들을 위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곡가 전민재입니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202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와 사랑이 충만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Q. 사실 전민재씨는 라이징 스타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6세에 첫 작품을 작곡하고, 8세엔 첫 피아노 독주회를, 16세엔 통영국제음악제의 의뢰로 10개의 교가(작곡:윤이상)를 관현악을 위한 편성으로 편곡하기도 했죠. 어릴 때부터 받아온 음악계의 주목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그런 점이 작곡 스타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나요?
작곡은 기악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부터 하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린시절의 작품들이 작곡가의 대표작이 될 수 없다 해도, 그때부터 여러가지 음악적 훈련을 해야만 비로소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의 작품과 연습이 있었기에 현재의 예술관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역시 과거를 그러한 훈련 속에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쓸 틈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거장들이 쌓아 올린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음악을 통한 사회적 성공보다는 공포감이 항상 저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작곡에 대한 자세를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Q. 최근 작곡되는 음악을 듣고 ‘현대음악은 어렵다’ 라고 말하는 관객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민재씨는 ‘현대음악도 쉽다’ 라고 얘기하셨죠. 전민재씨가 생각하는 현대음악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 궁금합니다.
대학시절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작곡가들과 ‘서정적 전위-숨’이라는 작곡동인을 만들어 활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단체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음악에서 사라진 서정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음악의 본연의 목적은 감동에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이후의 서양음악은 그 전개과정에 있어서 굉장한 격변기를 맞았던 시기입니다. 좋은 의미로써는 혁명이고, 부정적으로는 음악이길 포기한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20세기 이전의 서양음악은 컵 안의 내용물이 중요했던 반면에 20세기 이후는 내용물보다는 컵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컵을 무엇을 쓸 것인가만 고민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음악 외적인 고민들로 인해 청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훗날에 결국 인정받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혹자가 그렇게 말한지가 벌써 한세기 이상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현대음악은 난해한 분야입니다. 저는 백년 뒤의 모습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상실된 것은 ‘노래’입니다. 선율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떠올릴 때도 멜로디를 상상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음악의 정체성입니다. 20세기를 관통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음악을 지배하는 것은 음향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현대음악의 어떠한 파트는 아예 선율적인 요소를 배재하고 오로지 음향으로만 전개합니다. 이러한 음악을 쓰는 이를 작곡가라고 부르기 보다는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표현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와 같은 이유로 더이상 20세기의 망령에 사로잡히지 않는 음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사건이 있었는데, 제가 한번은 프랑스의 한 현대음악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제게 다가와 진심으로 고통스럽다, 제발 꺼달라 하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야 할 음악이 고문이 되었다니, 작곡가로써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대음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곡가들의 전위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의 부당함도 아니요, 연주자들의 탓도 아니고, 오로지 본인의 아집을 버리지 못한 특히 독일의 현대음악을 사대하는 우리 작곡가들의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Q. ‘누구인가, 내가 왜 이 길을 걷게 되었고, 그것에 집착해왔으며, 또 그것을 향해 고함을 쳤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 중) 활동을 일찍 시작한 만큼 10대, 20대를 거쳐 어느덧 30대에 이르러 그동안의 고민의 시간만큼 많은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작곡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관, 혹은 음악관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지금의 작곡가 전민재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부분은 어느정도 종교적인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삶의 가치관과 제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회음악을 작곡하는 데에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바흐도 메시앙도 자신들의 신앙심을 여과없이 음악에 쏟아 부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던 작곡가들입니다. 현재 쓰고 있는 작품들은 교회음악과 거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저 나름대로 각각의 작품에 신앙심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를 위한 ‘4월의 연가’ 중의 마지막 악장은 ‘십자가 오스티나토’입니다. 이 곡에는 코랄 선율 ’Nun komm der Heiden Heiland(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가 중심을 이룹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작품에 코랄 선율, 교회음악을 상징할 수 있는 대위적 구조들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고음악을 사랑해서 작곡을 하게 되었는데, 옛 음악의 대다수가 교회음악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음악적 경험들이 맞물려 현재와 같은 결과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과거 객석 인터뷰에서 마음의 표상으로 여기는 작품으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꼽으셨었죠. 2020년 작곡가 전민재에게 마음의 표상이 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질문 중에 가장 어려운 질문 같습니다. 제 마음속에 매번 다른 음악적 감흥들이 투영되지만 굳이 이번 인터뷰를 위해 한 작품을 꼽자면, 독일의 18세기 작곡가인 요한 아돌프 하세(Johann Adolph Hasse, 1699-1783)의 오라토리오 ‘Il cantico de’ tre fanciulli’ 중의 아리아 ‘Notte amica’입니다. 독자분들께 이 아름다운 음악을 공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Max Emanuel Cencic이 부른 음반이 가장 훌륭합니다.)
하세는 18세기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중의 한 명입니다. 고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접하기 힘든 작곡가이지만, 하세는 모차르트 이전에 정말 아름다운 멜로디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리아의 달콤한 선율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 당시 사람들이 왜 그에게 열광했는지 자연히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이러한 로코코적인 아취에 젖은 멜로디를 쓰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물론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매일이 격변하는 이 시대에 위의 곡과 같은 멜로디를 만들어 청중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준다면 작곡가로써 그보다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Q. 라이징스타의 단골 질문이자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2020년 상반기에 어떤 작품들이 예정되어 있나요? 전민재씨 작품을 실연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알려주세요!
2020년의 가장 큰 계획은 큰 규모의 피아노 작품 하나와 현악사중주 작곡과 발표를 계획해 두고 있습니다. 피아노 작품은 2년여 전에 피아니스트 손열음 선생님을 위해 쓰려했던 작품인데 올해에는 마무리를 지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악사중주는 제가 속해 있는 작곡동인 ‘서정적 전위–숨’을 통해서 발표됩니다. 두 작품 모두 날짜와 장소가 미정이지만, 빠른 시일 안에 선보여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